일기❤

5월 28일 일기 "늘 가던 약국이 문을 닫았다"

베리x도일 2021. 5. 28. 04:4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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밖에 나가도
땅만 바라보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가
편의점 가는 길 사이에 있는 약국이
폐업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.

해뜨기 전 새벽에 일어나
편의점 다녀오는 길에 보니
임대 문구가 떡하니 붙어있더라.

늘 사는 곳이 지겨워 1년에 한 번 씩은
이사를 하던 내가
4년차 붙어 살고 있는 조그마한 원룸구석.

해도 제대로 들지 않는 이 곳에
도대체 왜 4년간 붙어있는 중인진 모르겠다만
(아마 그동안 내 인생에 집중하지 않아서
내가 사는 곳에 대한 애착또한 없던지라
그냥 하루하루 생각없이 지냈겠지)

집 바로 옆에 있는 약국을 많이 다녔다.

약사님을 약국 앞이 아닌
길을 걷다가 마주치기도 했고
다치셔서 깁스를 하신 약사님이
1년간 깁스를 풀지 않은채
목발을 들고계신 모습도 봤고
습관처럼 늘 입구 앞에서
담배를 태우시던 모습도 봐왔다.

약 값이 오른 약이 있어도
예전 약 남아있는 재고가 있다며
싸게 주시던 약사 노부부.

적어도 70대 초반은 넘어보이시는 그분들께
무슨일이 생긴건진 모르겠지만
안을 보니 선반에 약들도 전부 빠져있는 걸 보니
이유를 몰라도 씁쓸하네.

뭐 단순히 연세가 드셔서
약국을 그만 하실 확률이 높겠지만
얼마 전 갈때만 해도
약국을 그만 하신다거나
그런 말씀은 없으셨는데...



다리 그림자가 길게 축 늘어진 모습이
꼭 내 마음 같아서 사진을 찍고나니
거짓말처럼 비가 세게 쏟아졌다.

난 오랜만에 주체적 슬픔을 느껴본다.
뭐 약국 때문은 아니겠지만
집에 돌아와 통조림을 따다가
손가락을 깊게 베었는데
그 고통이 기분좋아 한참을 웃었다.
내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이라는 감정을
주체적으로 느껴본 적이 언제일까?

무언가에 깊게 베인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?
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져 무릎 까져본게 언제지?
쓸데없는 것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나는
웃기게도 손가락이 베어 아프다는 사실이 기뻤다.

내 인생 간수하기도 힘든게 요즘이라지만
약사노부부의 남은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.
그리고 나 또한.

첫 단추를 잘못 끼워
비뚫어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던 나는
이게 불편한건지도 몰랐으며
다시 풀고 맞춰 끼워야겠다는
의지와 용기 그리고 감정마저 잃고있었다.

물론 내 삶의 모든 루트는 내 선택이었기에
그 선택을 만든 상황이 어찌됐든간에
내가 책임져야겠지. 앞으로도 마찬가지고.

사람이 한 가지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
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의 다짐이 필요하다고 한다.
그래서 오늘도 다짐하며 일기를 기록한다.
아무리 바보같이 살더라도 주체적으로 살자.

내 일기는 참 내가 쓰면서도 뭐라는지 모르겠다.
보는 사람들은 더하겠구만.

아무튼 오늘은 시체마냥 푹 좀 쉴란다
끝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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